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인천대공원을 아내와 함께 걸었습니다. 관모산 자락을 돌며 개울마다 시냇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가끔 얕은 물들과 풀들을 보면 그 냄새와 더불어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철없이 그저 자연을 보며 신기해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은 목사에게는 인생여정을 인도하는 반딧불과 같이 생각됩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골목길에 우산 셋이서 이마를 마주보며 걸어갑니다.” 초등학교에서 불렀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부를 때에 ‘걸어갑니다.’ 대목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내 자리로 들어오니까 선생님, 아이들 모두들 깔깔 웃어 주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장맛비가 지긋지긋하게 오고 있습니다. 이 비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찢어진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모습 같아 안타깝습니다.
비를 보며 많은 감흥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 냄새가 좋다.”라고 합니다. 비 냄새가 좋은 이유는 자연의 모든 냄새들이 기화되어 공중에 떠도는 데 그 냄새들이 비에 씻겨서 함께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물감도 모든 색이 합치면 검은 색이 되고, 빛도 합쳐지면 흰색이 되는 것처럼 공중에 모아진 냄새들이 비 때문에 씻겨서 좋은 비 냄새로 된다는 설명은 아주 특이한 현상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비 오는 날에 부침이 먹고 싶어지는 이유도 밀가루에 신 김치와 여러 가지 씹히는 반찬을 함께 부쳐낼 때에 비 오는 분위기와 맞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비빔밥이 그런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잔칫상의 국수 위에다 오색 고명을 올리는 이유와 신선로에 각 가지 색이 있는 오방색 반찬을 넣어 섞어먹는 이유는 우리 조상들이 청적황백흑 靑赤黃白黑의 동남중서북 東南中西北의 오행에 떨친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한 지혜라고 전해져 옵니다.
부자와 나사로라는 거지가 있었습니다. 부자는 자기 재물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연락(宴樂)하며 살았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잣집 대문 앞에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이라도 얻어먹으려고 구걸을 합니다. 심지어 나사로는 피부가 헐어서 부잣집 개가 헌데를 핥았습니다. 어느 날 나사로는 죽어 천국에 올라가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부자도 죽었는데 그는 지옥에 갔습니다. 뜨거운 지옥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를 봅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구걸을 하는데 나사로를 시켜서 손가락에 물 한 방울을 적셔서 자기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아브라함은 너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서 왕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부자는 다른 청을 해봅니다. 나사로를 자기의 5형제에게 보내어 지옥에 오지 않도록 자기처럼 살지 말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라고 청했습니다. 부자의 두 가지 청은 다 이루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5형제에게 모세와 선지자가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 것이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 그들에게 간다고 해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이름을 남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사로는 거지로 빈궁하게 살았습니다. 또한 질병으로 고생도 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인생이 비참하게 된 나사로는 어째서 이름을 남겼을까요? 나사로가 이웃에게 선한 일을 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는데도 나사로는 이름을 남기고 천국까지 간 이유가 궁금합니다.
나사로는 자신의 삶이 가난하고 질병가운데 있어 비참해도 그는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입니다. 비록 부자에겐 청을 무시당하고, 심지어 개들이 나사로의 헌 데를 핥게 하는 냉대를 받았다 해도 결국 나사로는 그 고난을 통하여 향기를 내며 살았습니다. 그런 나사로는 천국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것을 자기마음대로만 사용한 부자는 지옥에 가고 사후에 마지막으로 요청한 두 가지 요청도 다 거절당하고 맙니다.
우리에게 온 것은 누군가로부터 온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지혜입니다. 부자는 재물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였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재물은 없어도 그의 이름을 이웃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가난을 하나님께 맡기었을 때, 그는 고통을 피하게 해주신 하늘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빗속에 향기가 있다는 말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빗속에 향기가 있다는 말에는 이런 의미심장함이 있습니다.
금요일 저녁 식사 시간에 세기 엄마가 깨와 호박을 넣고 수제비를 했습니다. 구수한 맛에 밥과 함께 말아 먹었습니다. 공익요원인 태준 군은 일생에 처음 먹는 거라며 한 그릇을 더 먹습니다. 한 달 동안 비가 내려 습기가 차도 수제비 한 그릇으로 마음을 달래며 배부른 즐거움을 누립니다. 비빔밥을 먹으며 삶의 지혜를 깨달은 선조들처럼, 비 오는 날 부침을 해서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처럼, 고통을 통하여 이름을 당대에 나눈 나사로처럼, 우리도 우리 이름을 이웃과 함께 나누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