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토지를 읽기 시작하다

큰사랑실버라이프 2020. 6. 30. 10:15

토지를 읽기 시작하다.

토지 시작이 1971년 박경리 씨의 암 진단 수술 전날 동대문 쪽으로 남산까지 길게 뻗은 무지개를 본 후였다고 했다. 삶에 보복을 끝낸 평온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보름 만에 퇴원하고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원고를 썼다고 했다. 글을 쓰는 작가는 붕괴되어 가는 체력과의 싸움이었다고 했다. 운명에의 저항처럼 글을 써가면서도 작가는 언어는 덧없는 허상이라고 생각했다. 진실이 머문 강물 저 켠을 향해 한 치도 헤어나갈 수 없는 허수아비 언어, 그럼에도 언어에 사로잡혀 빠져나갈 수 없는 그것만이 강을 건널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애잔하다. 바람에 드러눕는 풀잎이며 눈 실린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우짖는 작은 새, 억조창생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과 애잔함이 충만된 이 엄청난 공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일사불란한 법칙 앞에서 나는 비로소 털고 일어섰다고. 찰나 같은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작가는 말한다.

 

밭을 매기 위해 풀을 뽑는 어느 농부의 아내가 무심코 뱉은 말에도 이 엄청난 작가의 고백 같은 것이 있다.

내가 죄를 짓는 것 같애요.” “왜요?” “내가 농사를 짓자고, 살겠다고 자라는 이 풀을 베고 있으니까요.” 알 수 없는 언어들도 가끔은 우리가 해야 할 말인 것 같다.